1919년 북해도
2018.02.23 23:25

서시


1919년 겨울의 시작점에 나는 거처를 옮겼다. 눈앞을 보기 힘들 정도의 눈발이 날린다는, 북해도로.




1919년, 여름. 동경.


내게 문하생이라고 할 거창한 것은 없었지만, 비슷한 게 한 명 있기는 했다. 북해도로 갈 거라는 말에 대답도 없이 따라서 짐을 싸서 온. 이국적인 이름, 생김새, 서툰 말씨와 재주. 마음에 드는 건 무엇 하나 없는 놈이었지만 과묵한 건 때로는 장점이 되더라. 아무것도 묻지 않고 북해도로 간다는 말에 뱉은 말 하나가. ‘저도 따라가도 됩니까.’ 오히려 내게 허락을 구하는 말씨였다. 사이가 퍽 좋지 않은 편집자가 구해다 준 것 치고는 쓸만한 사람이겠다 싶었다. 


형인 내 문하생은 내 작품을 꽤나 좋아해 주었다. 편집자보다 먼저 작품을 읽는 특권을 누리는 주제 내뱉는 감상이 영 시원찮기는 했지만. 아, 편집자와 문하생은 형제다. 앞서 말한 형제는 당연하게도 이 편집자 형제다. 편집자는……. 나를 굉장히 싫어한다. 나를 발굴하고 나를 유명 작가로 만들어주는데 굉장히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 정작 나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을 기는 일은 의뭉스럽기만 하다. 편집자는 내 글에 대한 애정을 포함해서 형과는 굉장히 달랐다. 피가 딱 반만 섞인 듯한…. 남의 가정사에 크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 추측과 함께 질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까만 사내가 형이랍시고 흰 사람을 데려오니 놀라기는 했지만. 그 까만 사람은 지금 내게 원고를 받아가기 전에 마지막 설득을 한다. 이사에 관한 것이다. 


“꼭 북해도까지 가셔야겠습니까. 당장 근처에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도 있을 텐데요.” 

“아시잖아요. 근처로 옮기면 근처까지 따라올 사람이라는 거.”


편집자는 말을 아낀다. 이번에 온 편지입니다. 전해달라고 했어요. 편집자가 내민 손에는 하얗고 우표가 붙어있지 않는 편지봉투가 놓여있었다. 정갈한 글씨의 사내 이름과 내 필명, 그리고 선생님에게. 편집자가 뒤이어 무어라 말을 한 것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움직이는 입모양은 읽었지만 뒤이어 들리는 목소리에는 관심이 가질 않는다. 내 온 신경은 편지로 향해 있었다. 편집자의 난처한 표정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편지지에 시선을 둔다. 친애하는 선생님, 제 팬레터를 제일 기다리신다는 말에……. 나는 기어코 편지의 마지막 문장, 마침표까지 읽어야 고개를 든다. 편집자의 그런 얼굴은 또 처음 본다. 낯선 얼굴이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평소라면 질렸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릴 텐데. 버릇처럼 짖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무튼, 스토커 일은 출판사에서도 경찰에게 부탁했습니다. 순찰을 강화한다고 하니 밤중에 경찰이 오가도 놀라지 마십시오. 카르나에게도 부탁해놓겠습니다. 편집자는 손윗사람에게 상냥하게 구는 편이었지만, 제 형은 예외인 모양이었다. 둘이 있을 때는 거친 단어들이 오간다. 그리고 지금처럼 제 형을 순순히 형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계간지의 가을 호에 실릴 원고를 넘기고 봉투를 두 개 받는다. 출판사에서 지불하는 원고료가 담긴 봉투와 내가 방금 읽은 팬레터. 여태까지는 팬레터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이 사내아이가 보내는 편지만은 꼬박꼬박 읽게 된다.


다른 편지는 앞으로도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으니, 팬레터 나부랭이는 모두 이 아이의 것만 달라고 하기를 잘한 것일까. 편집자는 귀찮은 수고를 덜었다는 식으로 나왔지만, 갈수록 편지를 전해줄 때마다 미묘한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팬레터의 내용을 알고 있는 걸까. 지난주에 내가 답장한 편지는 스토커에게 시달려 북해도로 이사를 간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혹시 편지를 읽고 이 아이를 스토커로 의심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스토커가 북해도까지 쫓아온다면 그때는 이 아이가 스토커가 맞을 것이다. 나는 문하생이 따라온다기에 조금 안일하게 군다. 카르나가 어떻게든 해줄 것이라며. 실제로도 지난번에 창문을 깨고 들어오려는 것도 그가 막아주었지 않은가. 아마 카르나를 작가로 착각했겠지만. 훤칠한 키에 흰 머리칼이,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덩치 큰 노인으로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편집자와 출판사의 사장, 그리고 카르나. 이렇게 세 사람만이 내가 여자인 것을 안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 내가 사내인 줄 알 것이다. 당장 팬레터의 이 사내아이도 나를 듬직한 남자로 알고 있으니. 편집자의 권유에 따라 필명을 남자 이름으로 한 건, 팬레터를 주고받을 때마다 사무치는 후회로 돌아온다. 후회는 이 아이에게 깊이 빠져있다는 걸 통감하게 되고. 편지를 읽을 때, 그리고 답장을 적어갈 때마다 귓불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내 탄식과 가장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동안 받은 편지들은 모두 서랍장 가장 깊은 곳에 쌓아놓았다. 쓰던 문장이 막혀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편지를 읽곤 했다. 아이가 편지를 주기 시작한 시기부터 생긴 습관이라 아직은 어설프지만. 이 아이가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다 보면 글을 어떻게 써왔는지 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작가로서 편지를 읽을 때는 더는 뺨 언저리에 열이 오르지 않았기에. 자신의 감정이 세간에서 말하는 것이 아님을 굳건히 믿게 된다. 그럼에도 아이의 문장은 고르고 읽기가 좋았다. 내 하나뿐인 문하생이 이 정도의 문장을 사용할 줄 알았으면 조금 다르게 보았을 텐데. 처음 이 아이의 편지를 가져다준 카르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편지를 내밀 때는 한참을 망설였지만, 표정 하나만큼은 평온하기를 짝이 없었다. 아이가 처음 쓴 팬레터와 겹쳐진다. 망설였다는 내용을 유려하게 옮긴 문장과 깔끔한 글씨체. 


“선생님.” 

“이사 때문에 그래?” 


편집자에게 받은 소중한 편지를 책상 서랍에 잘 넣어둔다. 문하생은 내 손끝을 흘끗거리다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걸까, 아니면 짐은 언제부터 쌀 건지 묻는 걸까. 만난 지는 여러 해가 지났지만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말주변에 애를 먹는 건 나뿐이다. 하는 수 없이 궁금할 만한 것들을 대강 추측하여 들려준다. 가을 내내 이사 준비를 하기 때문에 겨울 호에 실릴 원고는 연재하는 소설이 아니라 단편이 될 예정이다. 이삿짐을 싸는데 오래 걸리기 때문은 아니다. 장편의 연재분을 쓰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사로 인해 환경이 바뀌면서 생기는 것들 때문에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어려울 것이 뻔히 보여서.


북해도의 겨울은 상당히 춥다고 들었다. 두터운 옷을 몇 벌이고 장만할 계획을 세운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바닥을 보이지는 않을까 싶다. 여름이라 유독 얇은 문하생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문하생이랍시고 배우는 만큼 늘지 않아, 그동안 영 시원찮게 대접했던 것 같은데. 동경을 떠나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제대로 된 대접을 해두어야 북해도로 갔을 때도 나를 믿는다는 얼굴을 할 것 같다.




1919년 겨울, 끝자락.


북해도의 겨울은 낯설었다. 처음 땅을 밟았을 때는 추위로 인해 감기에 걸려, 가을 호에 실었던 인터뷰의 꼴이 되었다. 스토커는 독자들의 걱정을 끼치고 오히려 스토커를 자극할 수도 있다는 말에 대충 생각한 핑계의 꼴처럼. 이번 장편 연재를 쉬게 된 까닭은 지병으로 인해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 탓입니다. 독자들이 추측한 나이 때의 문인 남성을 적당히 흉내 내어 작성한 짤막한 글 때문인지 편집부 사람들에게도 많은 격려를 받았다. 졸지에 골병이 든 중년의 남성이 되었다. 곧 편집자가 올 시간이라, 담배를 끄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차가운 북해도의 공기가 폐 깊숙한 곳까지 얼릴 지경이다. 술 생각이 간절했다. 다른 이들에게 내가 중년의 남성으로 알려져서 좋은 거라고는 좋은 술을 선물 받는 것이었는데. 


편집자는 내가 평소에 마감을 치는 주기에 맞춰서 북해도를 방문했다. 무릎까지 쌓인 눈에 꽁꽁 언 발을 녹이는 모습이 낯설다. 어제 막 장편의 마감을 쳤어요. 출판사에서 선물해준 타자기는 영 속도가 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만년필과 원고지로 써 내려갔다. 글의 상태는 최상이다. 평소처럼 힘이 가득 실렸고 무게감은 북해도에 쌓인 눈의 무게와 비슷하다. 편집자는 꼼꼼한 시선으로 원고를 읽고 봉투에 넣는다. 직접 오실 필요 없지 않나요, 제 글은 한 번도 고치지 않으셨잖아요. 고심해서 쓴 글을 들고 출판사에 찾아간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을 고치지 않는다. 오히려 내 글을 고치는 건 숨어낸 오탈자를 찾아내는 교열부. 편집자 아르주나가 내게 고치라고 강요한 것은 필명 하나뿐이었다. 이런 글을 여자가 썼다고 하면 팔리지 않을 것이라며. 


“소포에 넣어서 팬레터를 전해드리다가 분실되기라도 하면 곤란해서요.”


편집자는 가방에서 팬레터를 꺼내왔다. 그간 팬레터는 한 달에 한 통씩 왔는데.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팬레터는 총 네 통. 전부 그 아이가 쓴 거예요? 편집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마시기 좋은 온도로 식은 차를 마시며. 그동안은 한 달에 한 통 편집부로 보냈는데, 제가 북해도를 서너 달 주기로 가게 되니까 모아서 썼습니다. 달에 하나씩. 괜히 카르나에게 북해도라는 먼 곳까지 이사를 왔으니 편지가 더는 오지 않을 게 분명할 것이라며 투정을 부렸다. 이 아이의 애정은 생각보다 깊다. 자칫 골병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내 투정을 들어준 카르나에게 보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도 우표가 붙어있지 않는 편지봉투의 겉을 살피다가 고개를 들었다. 긴장하던 편집자는 미간을 좁히고 나를 쳐다본다. 처음으로 이 형제가 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으로 과묵하다. 다소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아르주나, 편지 말인데요. 혹시 읽었나요?” 

“제가 그런 것을 왜….” 


편집자는 난처한 얼굴이다. 나는 이질감에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편집자는 편지를 쓴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물어볼 때마다 말했다. 우표가 없으니 편집부로 직접 갖다 준 게 아니냐고 추궁하면 한숨을 쉬고 이유를 설명했다. 편집부 사무실 안까지 작가님의 팬이라는 이유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사장님의 아들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것 아니겠냐며 비꼬는 어투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다면 출판사 건물의 안내데스크나 잡일을 하는 심부름꾼 같은 사람들이 내 편집자에게 직접 전해주었을 테고. 그러니 내 편집자는 편지를 쓴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어야 했다. 오늘도. 왜 편지가 네 통이나 되는지에 대해서 모르는 게 응당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편지를 읽었어야 했는데. 편지봉투는 개봉한 흔적이 없고.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잠깐만요. 아르주나.”


형제는 이런 부분도 닮았다. 여름, 스토커가 찾아왔을 때 담담히 맞서던 카르나의 표정처럼. 아르주나는 변명을 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하얀 거짓말을 해줄 마음이 없는 거겠지. 아니면 더 실수하기 전에 침묵하는 걸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상황에서 추측은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그동안 나를 왜 속인 것인지에 대한 답은 쉽게 내주지 않을 사람이니까. 머리를 써서, 어떻게 하면 사실을 실토하게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내 생각은 쉬이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은 일절 보여주지 않는다. 아르주나는 가져온 네 통의 편지를 한 손에 챙기고 다른 한 손은 가방을 쥐었다. 나는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얽힌 시선의 끝이 불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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